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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a 광주시립미술관 Gwangju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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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

군상

작품명
군상
작가명
이응노
제작년도
1986
재료
한지에 수묵담채
크기
134x273
작가설명
이응노 기간: 1997. 2. 25 ∼ 3. 9 장소: 갤러리 현대 고암 이응노의 문자추상 (1960-1980) 작품세계 유재길 / 미술평론가 Ⅰ. 고암 이응노(1904-1989)의 작품세계를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190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86세로 별세하기까지 그는 너무나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고암은 동일한 양식의 모방이나 반복 적 표현기법에서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화가였다. 결국 그가 추구하고자 하였던 것은 동양 예술정신과 진실된 삶의 예술혼이며, 특히 우리 고유의 전통적 미의식과 표현 에 애착을 갖고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새로운 예술세계의 모색이었다. 이와 같은 고암 의 다양한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본고는 문자추상이 탄생된 배경과 전반적인 시기 별 특성을 간략히 살펴보면서, 특히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1960년대와 1980년까지 그의 대표적 작품인 (문자추상) 연작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고암의 화업은 19세 때인 1923년 문인화 제작부터 시작한다. 20대 초반 고암은 김진규 문 하에 들어가 사군자를 비롯한 산수화 등 문인화를 배우게 된다. 당시 작품 (청죽, 1924(선 전 입선작))을 비롯한 사군자 제작은 전통 문인화의 수용기였다. 그러나 초기 작품이 엄격 한 전통적 양식의 수용이라면 점차 30대로 들어서면서 같은 소재를 반복하더라도 관념적 인 문인화가 아니라 실물의 사실적 묘사와 분위기가 강조되는 변화를 갖기 시작한다. 1930년대 초반 제작된 바람에 날리는 (청죽) 연작과 (매화,1934) 등이 대표적 예이다. 초기 화가수업 시대 이후 고암은 1935년부터 43년까지 일본에 유학하면서 새로운 미의식 과 화풍에 변화를 갖는다. 일본 유학시절 그의 가장 큰 변화는 전통 문인화에서 벗어나 그 림의 소재를 현실에서 찾는 사실적 묘사였다. 이는 관념적 산수화와 달리 세필에 의한 선 묘를 중심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양식의 변화로 주로 그가 선택한 소재 는 우리의 농촌이나 산사 풍경 및 일본 도시 풍경이다. 원경과 중경, 근경의 관념산수에 서 벗어나 사진 책들이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적 풍경으로 일점 원근법이 강조된다. 이 러한 구성은 대상이 크게 확대되면서 근대적 회화 성격을 갖는 사실주의 풍경으로의 전환 을 뜻한다. 1940년대 중반과 50년대 초반 고암은 스케치하듯 그리는 사실적 수묵 풍경 그림을 지속시 키면서 인간형상이 등장한다. 특히 50년대 한국 전쟁의 체험으로 그의 소재는 단순한 풍 경이 아닌 전쟁의 참혹함이나 고통스런 삶을 주제로 (피난,1950)이나 (폐허의 서울,1954) 등이 그려진다. 또한 풍경의 경우도 한가로운 산수가 아닌 도시의 (야경,1953)이 등장하는 가 하면 (공사장 인부,1953-54)를 비롯하여 노동자, 촌로, 취객 등이 묘사된다. 이러한 경 향의 작품에 나타난 조형적 특성은 사실성보다 반추상에 가까운 표현주의 성격의 작업이 다. 섬세한 세필 신묘가 없어지고 거칠고 굵은 터치와 먹의 농담에 변화를 주고 있다. 여 기에는 원근감이나 배경 묘사가 생략된 빈 공간과 왜곡된 형태의 주관적 표현으로 작가 의 감정이 강하게 나타난다. 인물과 도시 풍경 중심이 1950년대 후반으로 가면 수묵담채의 반추상 경향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는 1958년 프랑스로 가기 전까지의 변화이다. 이때 작품은 전통 산수화를 바탕으로 자 유로운 추상적 표현과 행위성이 강조된 반추상화이다. 산이나 나무, 옛 건축 등이 어렴풋 이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여백은 흩뿌려진 먹의 점과 휘갈긴 선들로 무질서하게 채워지 고 있다. 마치 관념 산수화를 지워나가는 추상 풍경화처럼 전통과 현대성의 결합처럼 인 식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서 작가의 독자적 화풍이나 완결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단지 현대 회화에 관한 고암의 실험적 자세가 돋보이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고암은 스스로의 부족 함과 무언가 새로운 시대적 욕구를 느끼며, 자아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어려운 결단을 내 려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다. Ⅱ.본고에 중점적으로 다를 이응노의 (문자추상) 연작은 1960년대 초부터 70년대 후반까 지 제작된 작품을 중심으로 한다. 이 시기에는 작가의 독자적 예술관과 문자추상이라는 독창적 조형언어가 만들어진다. 고암이 프랑스에 도착하여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동 양의 예술정신과 표현기법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자신의 예술세계를 창조" 하는 것이다. 1973년 동아일보에 발표된 것을 보면 예술가의 사명은 "새로운 가치창조"라고 천명하면 서, "새로운 가치 창조라는 것은 생에 대한 진실의 창조이며 따라서 이는 독창적일 수밖 에 없다."라고 말한다. 당시 현대미술의 국제무대인 프랑스 파리에서 동양의 전통적 미의 식과 표현방법을 새로운 경향과 접합시키는데 있어서 서구미술의 무비판적 수용보다 동 양 예술정신과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하고자 노력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이후 "새로운 가치 창조"의 결과를 목표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이 고암의 대표적 조형언어 가 되었던 (문자추상) 연작들이다. 문자추상은 1950년대 후반 도불전 수묵 담채화의 반 추상화와 연결되면서도 기존의 전통 적 표현 방법과 다른 성격을 갖는다. 1976년 문자추상에 관해 고암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미 동양화의 한문자 자체가 지니고 있는 서예적 추상은 그 자원(문자의 근원)이 자연사물의 형(태)을 빌린 것과, 음과 뜻을 형태로 표현한 것이니 한자 자체가 바로 동양 의 추상화적 바탕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 여기서 고암은 형태의 아름다움이 무형의 공간에서 만들어진다는 "무형의 유형"이라는 동양 철학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 는 문자추상은 이와 같은 글씨가 아닌 획과 점이 무형의 공간에 자유자재로 구성해 나가 는 "무형의 발언"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무형의 공간"에 펼쳐지는 "60년대와 "70년대에 중점적으로 제작된 문자추상 작업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3가지 표현양식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즉, 1)초기(1960-65). 꼴 라쥬 문자추상과 2)초기와 중기 (1960-70):. 서예적 문자추상, 3)후기 (1970-80): 구성적 문자추상이다. 1)꼴라쥬 문자추상(1960-65) 첫 번째 꼴라쥬 기법에 의한 문자추상은 프랑스로 건너간 초기에 제작된 것들로 1960년 대 초반에 주로 나타난다. 이 작업은 신문지나 잡지 등을 아주 잘게 잘라 캔버스 위에 붙 여 나가는 기법으로 20세기 초 큐비즘이나 다다이즘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였던 기법이 다. 초기 고암의 꼴라쥬 작품에서 "기호"나 "문자"가 명확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무엇보 다 초기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꼴라쥬 기법의 단순한 형식적 모방이 아니라 이미지 파괴 이며, 추상표현주의 성격의 추상적 공간 실험이다 즉, 캔버스 위에 붙여진 작은 종이 조각 들은 사실적 형태를 파괴시키고 있으며, 색채는 강렬한 원색 대비로 비정형의 앵포르멜 추상처럼 감정 표현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초기 신문지와 잡지를 이용한 꼴라쥬 작업은 곧 한지를 이용한 꼴라쥬 작업으로 바뀐다. 색채가 사라진 무채색의 꼴라쥬 화면에 서서히 한자나 상형 문자와 같은 형상이 등장하 기 시작한다. 표현기법은 그리기보다 짙은 갈색과 흑색 바탕에 한지를 손으로 찢어서 붙 여 나가는 방법이다. 20세기 초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새로운 표현기법인 꼴라쥬가 고암 에 의해 새롭게 탄생되는 순간이다. 서구 조형어법을 수용하면서 한지라는 재료의 고유성 을 살린 마티에르와 문자형상의 독자적 조형언어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여기서 더욱 중요시되는 것은 재료적 측면보다 상형 문자와 같은 문자추상의 조형적 독창 성이다. 문자추상의 출발은 한지를 찢어 무채색의 짙은 바탕에 꼴라쥬되면서 시작된다. 마치 고 대 상형문자판과 같이 4-5개 단계로 구획되면서 기호화된 형상이 생성되는 것이다. 문자 형상은 찢어진 한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명확한 윤곽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점과 원, 삼 각형, 또는 사람이나 나무, 산 등 구체적 대상이 변형되고 왜곡된 추상적 형상들이다. 이 렇게 만들어진 문자추상의 개체들은 유기적 형상들로 자생력을 갖고 꿈틀거린다. 개개의 생명체가 움직이듯 문자 형상의 추상적 기호들은 생명감을 갖고 살아 움직이고 있다. 2)서예적 문자추상(1960-70) 고암 이응노의 서예적 문자추상은 꼴라쥬 문자추상과 동시에 시작되면서 1970년대 초반 까지 지속된다. 초기 서예적 문자추상은 고암 스스로는 "사의적(寫意的)" 추상이라고 하 고 후기 작품을 "서예적(書藝的)" 추상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필자는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어 서예적 추상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서예적 문자추상은 1962년 프랑스 파리 파게티 화랑에서 초대전 을 갖게 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캔버스에 화선지를 붙이고 수묵이나 혼합 물감으로 그려진 서예적 문자추상은 서구의 앵포르멜 추상과 전혀 다른 비정형의 조형언 어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번 갤러리 현대에 전시된 서예적 문자추상은 1962년 파리 화 케티 화랑에서 전시되었던 것들로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주로 1962년 전후에 제작된 서예적 문자추상은 수묵담채와 무채색에 가까운 색상으로 바 탕을 만들고 흑백의 문자형상이 그려진다. 여기에 나타난 문자형상은 판독하기 힘들다. 사람이나 동물, 식물 등 변형된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하며, 의미 없는 점과 선 등이 공간 에 질서를 갖는다. 이러한 형식은 서구의 추상표현주의와 동양의 한자 서예와의 상관관계 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문자추상에서 고양의 조형적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꼴라쥬 작업보다 동양화의 서 예적 기법을 바탕으로 제작된 서예적 문자추상이다. 꼴라쥬 문자추상과 서예적 문자추상 의 조형적 차이점은 대단히 크다. 꼴라쥬가 서구의 현대적 사고를 담은 이성적 표현이라 면 서예적 문자추상은 감성의 자유로운 이미지 추상작업으로 동양의 예술관이 담긴 추상 화이다. 또한 꼴라쥬 작업과 초기 서예적 문자추상의 차이는 화면이 수평구성에서 수직구 성으로 바뀐 점이다. 수직 구성의 서예적 문자추상은 서예의 족자형식을 갖추며, 꼴라쥬 작업에서 보여 주었던 두터운 마티에르가 사라지고 수묵의 농도에 의한 깊이를 추구하게 된다. 이는 서구의 물리적 깊이와 전혀 다른 시각적 깊이를 강조한 동양적 정신이 담긴 현 대적 추상회화로 해석된다. 60년대 후반 서예적 문자추상은 초기나 중반의 작업과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초기 작 업과 달리 후반 작업은 개체성보다 전체성을 강조하면서 화면 전체가 하나의 구성체로 통 합된다. 엄격하게 구획되었던 개개의 문자형상은 없어지고 개개의 문자가 서로 연결된 커 다란 덩어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동양화의 여백과 같은 의 미가 형성된다. 먹의 농담 변화가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커다란 문자추상의 유기적 형상 은 입체감과 깊이를 가지면서 힘있는 추상표현으로 이야기된다. 3)구성적 문자추상(1970-80) 고암은 하나의 커다란 유기적 형상의 서예적 문자추상에 머물지 않고 구성적 문자추상이 라는 또 다른 양식의 변화를 추구한다. 파리에서 작업한지 10여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당시 60세가 지난 1970년부터 "80년까지 제작된 구성적 문자추상은 그의 예술세계에 있어 서 완숙기이며, 절정을 이룬 시기이다. 이처럼 노년에 대표적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 은 끝없는 노력과 예술가로서의 창조적 의지가 그 원천임을 확인하게 된다. 구성적 문자추상은 화면에 수평과 수직 구조의 변화로 복합적 성격을 갖게 되며, 무엇보 다 명확한 윤곽선으로 개개의 문자 이미지 성격을 독립시킨다. 1969년 (구성: 종이 위의 담채)는 구성적 문자추상의 시작이다. 짙은 미색의 바탕 종이 위에 황색의 작은 문자형태 를 그려나가고, 작은 문자형태마다 검정색으로 테두리를 한다. 검정색 테두리는 하나의 경계선이며, 동시에 개체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한자의 서체와 인물형상을 변형시켜 결합시킨 기하학적 형태의 구성적 문자추상은 엄격 한 질서를 갖는다. 여기서 문자추상은 이미지 강조보다 평면의 절대성과 순수한 조형미 의 추구로 해석된다. 구체적 이미지에서 벗어난 색면 구성의 추상적 기호화들, 이것은 점 이나 선 같은 서예적 문자추상에서 추구하였던 자유롭고 유희적인 성격과 전혀 다르다. 즉, 문자나 자연의 구체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구성적 질서를 중요시하는 순수한 색면추상 의 아름다움이다. 1975년 전후 구성적 문자추상은 이처럼 기하학적 추상의 색면에 의한 구성작업이다. 단순 화시킨 문자형상은 흰색이나 미색 등 무채색 계열에서 벗어나 짙은 청색과 적색, 주홍색 등으로 변하고, 공간과의 경계선은 검정색 대신 흰색이나 노란색을 사용한다. 이러한 경 계, 윤곽선은 개개의 형태를 명확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 결과 개개의 문자들은 독립 되면서도 서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고 하나의 공간 질서를 형성하게 된다. 당시 재료의 사용도 수묵이나 한지에 한정시키지 않고 나무판이나 캔버스, 비단, 융 위에 혼합재료를 사용하는 등 다양함을 보여준다. 후기 구성적 문자추상은 "70년대 중반에 제작된 기하학적 형태의 구성적 문자추상과 병행 되면서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이것 역시 구성적 문자추상의 범주에 속하며, 작은 색면 과 수묵의 선묘가 등장하는 다양한 변화를 준다. 윤곽선을 생략한 작업들은 1960년대 초 기 문자추상과 다시 연결되며, 구성적 질서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문자 이미지에서 나타나 는 자유로운 추상표현의 조형적 성격을 갖는다. Ⅲ. 1960년부터 1980년까지 제작된 고암 이응노의 (문자추상) 연작은 전 생애 중 가장 독 창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령이 50대 중반부터 70대 중반에 이르는 이 시기 는 고암 예술의 완숙기이며 전통과 새로운 미의식을 결합시킨 시기이다. 1923년 19세 때 처음으로 전통 수묵화와 사군자를 배우고, 이후 일본 유학에서 사실적 자연풍경을 그리기 도 하며, 해방 후 한국전쟁과 어려운 현실을 표현적 성격으로 그리기도 하였던 고암은 1967년부터 2년 반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문자추상이라는 사의적 추상화를 완성하고 자 하였다. 꼴라쥬 문자추상이나 서예적, 구성적 문자추상을 통해 고암이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은 무 엇인가?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드나 `새로운 가치창조"와 `생애 대한 진정한 예술"이다. 고암의 문자추상은 살아 숨쉬는 그림이다. 점과 선, 흑과 백, 그리고 색면과 윤곽선 등이 질서를 구축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생성하는 유기체로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문자추상에 나타난 자유로운 표현과 엄격한 구성, 그 사이를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예술세 계를 형성한 고암의 문자추상은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독자적 조형언어이며, 새로운 가치 창조의 결정체로 한국 현대미술사에 기록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 것을 잃지 않으려는 화 가로서 1989년 운명하기 직전에 남긴 유언과 같은 고암 이응노의 말을 음미하면서 `생에 대한 진정한 예술"로 (문자추상)의 작품세계를 읽어본다. "나는 우리가 쓰는 말과 문자(文字) 흰 옷을 입는 기상 등 깨끗하고 고상하고 착한 우리 민족성을 그리고 싶습니다. "-1989. 1. 11.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