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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a 광주시립미술관 Gwangju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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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

우후

작품명
우후
작가명
조방원
제작년도
1993
재료
한지에 수묵담채
크기
40×60
작가설명
조방원 기간 : 1982. 10. 13 - 18 장소 : 롯데 미술관 큰 그릇과 큰 그림 文 淳 太(小說家) 예술가는 각기 나름대로의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 작은 종지에서부터 사발ㆍ항아리의 크기까지 저마다의 자기의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 예술가들은, 비록 그릇은 작지만 平生 을 철철 넘치도록 채우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아리만큼 큰그릇을 가지고도 바닥 만 적시고 마는 사람도 있다. 큰그릇을 가득 채운 사람을 大家라고 일컬은다. 雅山 趙邦元화백의 그릇은 白瓷항아리만큼 크다. 老子의 道의 그릇처럼 비어 있으면서 가 득하고, 가득하면서도 결코 넘치는 일이 없다. 그의 그릇은 욕심이 없는 無念無想의 白瓷 임이 분명하다. 雅山 화백의 큰 그릇 속에는 이 世上 오만가지 잡다한 것들이 다 들어있다. 그렇다고 해 서 성격이 불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이 라는 지나칠 정도로 黑白論理가 철저하고 분명하다. 그러기에 그와 가깝게 사귀기가 무 척 까다롭다. 그러나 일단 그와 가까와지면 큰 그릇 속에서의 .平溫함과 가장 人間的인 뜨 거운 溫을 함께 느끼게 된다. 詩人 崔夏林兄과 雅山畵伯의 人間과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때 崔夏林 兄은 \"雅山은 누가 뭐라고 해도 大家의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 畵家이다. 그릇이 큰 만 큼 우리들의 기대 또한 크다.\" 고 말했었다. 그릇이 크기 때문에 그는 약간 無心한 듯하고 잔情이 없는 것 같기도 하며 고집스럽다. 고 집스러운 먹그림 때문에 대중과의 迎合이 잘 안 되고 그것 때문에 손해보기도 한다. 또한 國展 심사위원을 여러 차례 맡았기 때문에, 同門 후배나 제자들을 앞세워 韓國畵壇 에 \"雅山師團\" 하나 이끌며 바람을 일으킬 만도 한데 도무지 畵壇 정치를 하러 들지 않는 다. 現代의 偶像이라고들 하는 世俗的인 명예나 욕심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起 世脫俗의 큰 몸짓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雅山화백은 고집스러울만큼 故鄕을 떠나지 않고 無等을 지키고 있다. 그는 全羅道를 그 의 人生만큼이나 사랑한다. 살아온 역사가 그렇듯이 그는 철저한 全羅道 庶民이다. 깊고 튼튼한 百濟精神의 뿌리를 키우고 있으면서 歷史의 아픔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자랑스러 운 畵家이다. 그는 그림 속에 집 한간을 그려 넣을 때도 風水地理를 따지고 東洋畵의 法理에 철저한 論 理를 넘어선 東洋的 思考의 이행자 이다. 풍부한 설화와 우리 自然에 대한 깊은 美意識으 로 하여 그의 먹그림은 幽玄美를 촉발시켜 준다. 그렇다고 그의 脫俗함이 現實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歷史의 아픔을 사랑하 듯이, 그의 理想은 언제나 현실 깊이 뿌리박고 있다. 一筆一寫의 간결한 필치로 그려진 粗放大膽한 그의 수묵화는 禪味와 文氣를 한결 살려내 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雅山화백의 먹색은 老莊의 虛無가 아닌. 禪宗의 無念瞑想 사상과 통한다. 禪과 畵의 관계를 그 양자가 氣韻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그의 作品은 濃墨이 더 두꺼워지고 筆銑이 강해졌다. 먹색이 짙어졌음은 그가 파악 하고 있는 歷史的 현실이 어두워졌음을 의미하며 필선이 굳어졌다는 것은 生命의 意志를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의 먹색은 恨의 응어리로 해석되고 있다. 雅山은 손끝의 재주로 그림을 그리는 技巧主義者가 아니다. 그는 빛나는 靈感으로 그린 다. 대담한 필치로 흠벅지게 그린 먹색의 미친 듯한 나무와, 어둠 속에서 찬란한 아름다움 을 의축시킨 수묵산수를 보고 있으면, 감각으로써가 아닌 感動으로써, 인생이 무엇이고 天地가 무엇인가를 생각케 해준다. 또한 오래 전부터 그가 시도한 風俗畵에서의 減筆 인물은 童話的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 다. 아무튼 雅山 趙邦元은 큰 그릇의 큰 畵家이다. 요즘 그의 그림이 화랑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자 일각에서는 그가 作品을 많이 그리지 않는 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지 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는 作品을 게을리 하는 것이 아니고 아껴 그리고 있다. 가뜩이나 東洋畵의 수요가 늘어난 요즘. 量産속에서의 大作이 나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큰 그릇을. 큰 作品으로 채우기 위해 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