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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a 광주시립미술관 Gwangju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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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

군무

작품명
군무
작가명
서세옥
제작년도
1992
재료
한지에 수묵
크기
82×132
작가설명
서세옥 기간 : 1989. 4. 20 - 29 장소 : 현대화랑 정병관 山丁의 최근작 문기(文氣)에서 나온 추상 모든 진실한 작품은 침착하다 - (칸딘스키) 山丁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작용을 하는 것 같다. 항상 소란한 음 악을 멀리하고 깊은 밤을 독서와 명상, 그리고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는 山丁의 생활습 관이 그림 속에 스며있는 것 같다. 무한을 생각케 하는 활짝 트인 화면 공간 속에 가장 간결한 형태를 빈틈없는 구도 속에 배 치한 묵적(墨蹟)들은 "기(氣)"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힘"이라는 말에 신 비(神秘) 또는 숭고(崇高)와 같은 말들을 더해야만 이해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현대회화 가 재즈음악의 리듬감 같은 것에 은연중에 침투되어진 것과 비교하면, 山丁의 그림은 고 전적인 인간의 작품이며, 칸딘스키가 생각한 숭고한 형이상학적인 회화에 속한다 그 형식 과 내용이 영혼의 움직이는 기능에 집약(集約)되어서 속세를 한참 떠나 있는 것 같은 느낌 을 준다. 너무나 고고(孤高)하여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정신의 세계 속에 그의 작품 은 있는 듯 하여 때로는 보는 이에게 절망감마저 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산정의 특징(特徵)인 동시에 강점(强,點)인 것이다. 즉 난해하지만 때로는 난해성은 작품의 고귀 성(高貴性)과도 접근되기 때문이다. 산정의 그림들이 완전히 "직관"의 원리 위에 기초를 둔 문인화(文人畵)의 한 전통(傳統) 과 직결(直結)되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적(西歐的)인 추상화의 개념에서 출발하지 않은 특이한 추상성(抽象性)을 가지고 있다. 넓은 화면에 점을 몇 개 찍은 "비명 (碑銘)"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점(點)이나 선(線)들이 모두 문자에서 시작한 뿌리를 가 지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 전시되는 작품들 또한 사람 인(人)자에서 시작된 상형문자(象形文字) 같 은 기호(記 )와 인간의 여러 가지 형태 사이에서 탄생한 추상적인 선과 점으로 된 그림이 다. 점이 머리를, 선이 동체와 사지(四肢)를 축약(縮約)하여 그린 것인데 때로는 전연 추 상적인 선과 점의 연속 같다. 연속무늬라는 느낌이 없는 것은 선의 강약이 자유롭게 전개 되어서 하나도 동일한 형태나 점이 없기 때문이다. 군중(群衆)이 오른편으로 달려가는 것 같은 구도가 있는데, 발묵(潑墨)과 석묵법(惜墨法)의 자유로운 구사로, 결과적으로 나타 난 것은 대각선 방향(對角線方向)으로 질주(疾走)하는 붓의 힘이지 사람의 형태 그 자체 의 운동은 아니다. 한사람의 인간보다, 군중을 연상시키는 화면들이 많은데, 이것은 대도 시의 인간홍수상태 (人間洪水狀態)와 그 역동작(力動的)인 밀리고 밀치는 활력(活力)같 은 것을 생각케 한다. 원근에 따라 정돈된 형태들 속에서도 화면 가득히 찬 선들은 순수조 형 (純粹造形)으로서의 가치(價値)가 인간 표현적인 가치보다 우세하다. 즉 인간형성은 조형성(造形性)을 위한 핑계와 같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주제의식 (主題意 識)을 부정할 수 없다. 붉은색 원형둘레를 춤추며 돌아가는 군상들은 발묵(潑墨)효과에서 오는 회화성이 인물표 현이라는 측면을 압도한다. X자형의 큰 기호형태(記 形態)는 머리를 암시하는 약한 점이 없다면 순수 추상적인 기호가 것이다. 금석문(金石文)이나 문자의 발생기에 출현한 것 같 은 기호 등은 잘 보면 여러 가지 몸 자세의 변화상(變化相)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그림 역시 그 호방(豪放)한 필법의 효과가 상형성을 압도한다. 채색이 없는 검정색의 선묘형상 (線描形象)들은 그 기호적인 성격과 그 힘과 그 자발성을 채색의 경우보다 강하게 나타낸 다고 본다. 붓을 두 서너번 놀린 선화(禪畵)같은 그림들은 기교(技巧)없는 묵적(墨蹟)의 지고(至高)의 상태(狀態)라 할 것이다. 필법에 변화가 있다면 지난날에는 기교가 있었으나 현재는 기교 (技巧)를 포기한 단순화 가 두드러진다. 붓으로 그렸다기보다는 붓을 던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이 될 것이다. 붓의 전진(前進)하는 속도감(速度感)과 상하(上下)로 누르고 떼는 강약의 압력은 낭만적인 금선(琴線)의 무쌍한 변화와도 같다. 우연적인 지고(至高)의 효과(效果)를 가져 오는 발묵법과 운필법은 산정그림의 기본적인 필법이다. 그리고 여백(余白)은 형태보다 강하여 동양화의 진수를 체득한 화면공간 구성이 된다. 여백과 필연적으로 연계되는 것 은 구도인 바, 연필로 그린 많은 에스키스가 그림이 될 때에는 형태와 여백은 종합적으로 단번에 연결되며, 분리되어 구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형태가 여러 개 집합되어 형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여백과 함께 단번에 형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실패 없는 걸작은 때 로는 많은 파지(破紙)속에서 튀어나온 하나의 선택에 불과할 수 있다. 바로 이 선택(選擇) 의 안목(眼目)이 기술보다도 더 중요한 예술가의 자질일지도 모른다 지(紙)·필(筆)·묵(,墨)을 최대한의 경제성(經濟性)에 입각하여 구사하는 능력이 산정이 갖 춘 강력한 무기인 것 같다. 스스럼없이 필력 (筆力)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 이것이 화가 산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필력은 필연코 정신의 영역으로 그 근원을 찾아야 하며, 이것은 그의 방대한 장서와 독서 력에 있다고 생각된다. 즉 그의 추상은 문기(文氣) 에서 나온 것이다.